역사

조정에는 만조백관이 모여있다

봄22 2010. 2. 28. 16:41

<조정>

궁궐에 가면 정문을 통과하여 큰문 2개를 지나야 궁궐에서 제일 크고 중요한 건물인 정전 또는 법전을 볼 수 있다. 경복궁을 가게 되면 정문인 광화문을 들어가서 흥례문을 지나고 근정문을 들어서야 근정전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정전에은 매우 넓은 마당이 있고, 사방이 회랑으로 둘러싸여 있다. 이곳에서는 주로 조회를 하고, 가끔 연회나 행사를 치르게 된다. 

  

넓은 마당을 조정(朝廷)이라 부르는데 별 특별한 시설물이 없는 것 같다. 그러나 그곳을 찬찬히 들여다 보면 옛 모습을 조금은 더듬어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내외 관광객들로 붐비는 편이기 때문에 좀 소란스럽고 어딘가 들뜬 듯하면서도 조정의 분위기는 자못 그윽하다. 조정 바닥에는 흔히 박석이라고 부르는 평평한 돌들이 깔려 있다. 중국의 궁궐은 바닥이 흙을 구운 전돌로 되어 있는 데 비해 우리나라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화강암으로 되어 있다. 화강암이되 그 형태나 표면이 다듬은 건지 다듬지 않은 건지, 요즘 흔히 보는 보도 블록처럼 네모 반듯반듯하고, 표면이 반질반질하지가 않다. 

 

조정을 남에서 북으로 가로 질러 근정문에서 근정전으로 길이 나 있다. 그 길은 세 구역으로 나뉜 길을 삼도(三道)라고 하는데, 그 가운데 길이 양 옆의 길보다 조금 높다. 가운데 길은 왕만 다니게 되어 있는 어도(御道)이다. 신분제 사회에서 최고로 고귀한 존재인 왕은 다니는 길까지도 이렇듯 구별하였다.

 

<품계석>

삼도의 양 옆으로는 자그마한 비석 모양의 돌들이 열 두 개씩 줄지어 서 있다. 거기 써 있는 글씨들을 보니 근정전 가까운 데서부터 정일품(正一品), 종일품(從一品), 정이품, 종이품, 정삼품, 종삼품으로 나가다가 사품부터는 '정'만 있고 '종'은 없이 구품까지 이어진다. 이 조정에 참여하는 관원들은 각자 자기 관품에 해당하는 위치에 가서 서라는 용도로 만든 품계석(品階石)이다.

 

삼도의 동쪽 편에 서는 관원들을 동반(東班)이라고 하고, 서쪽 편에 서는 관원들을 서반(西班)이라고 한다. 동반은 문반(文班)이고, 서반은 무반(武班)이다. 이렇게 조정에 참여하는 동반과 서반, 다시 말하자면 문반과 무반을 가리켜 양반(兩班)이라고 하는 것이다. 원래 양반이라는 말은 여기서 나왔다. 이 곳에 서기 위해서는 과거에 급제를 하여야만 가능하다. 

 

정종의 각 품계는 대부분 다시 둘로 나뉘는데, 정삼품의 경우에 통정대부(通政大夫)와 통훈대부(通訓大夫)로 나뉜다. 그 통정대부 이상을 당상관(堂上官), 통훈대부 이하를 당하관이라 한다. 당상관과 당하관이란 용어의 뜻을 이 조정에 비겨서 풀자면 당상관은 당, 곧 임금이 계신 건물에 오를 수 있는 지위를 말하며, 당하관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서는 그 아래 있어야 하는 관원이란 뜻이겠다. 

 

당상관은 관복의 가슴과 배에 붙이는 장식인 흉배(胸背)의 무늬가 문반은 학이 두 마리, 무반은 호랑이가 두 마리인데 비해서 당하관은 각 한 마리씩이다. 흉배만이 아니라, 옷의 색깔과 여러 장식들도 서로 다르다. 복장이나 장식만이 아니라 그들의 정치적, 행정적 구실도 크게 구별되었다. 당상관이 주로 각 관서의 장관을 맡았다면, 당하관은 중하급 간부직을 맡았다.

 

정삼품 품계석의 뒷편 쯤 되는 자리 몇 군데 박석에는 지름이 20Cm쯤 되는 동그란 쇠고리가 박혀 있다. 눈여겨 보면 그런 고리는 근정전 기둥에도 박혀 있다. 일반 관람객들은 흔히 이 쇠고리가 무엇에 쓰던 것일까 아주 궁금해 한다. 관원들이 이 조정에 모여 있을 때는 햇살을 가려 줄 차일을 쳤는데 이 고리는 그 차일치는 줄을 매던 것이다. 그 차일을 그 넓은 조정 전체에 다 칠 수 없었으니 앞 부분 당상관들이 서는 정도만 쳤던 것으로 짐작된다.

 

조정에 들어설 때면 지금 행사가 진행된다고 상상해 보자. 만조백관이 품계석에 줄맞추어 서로 마주보고 서 있고, 초엄,중엄,삼엄의 북소리 뒤에 근정전에 임금이 등장하는 모습을.....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