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스크랩] 전각

봄22 2010. 4. 11. 17:11

  전각(篆刻)이란

낙관을 하기 위해 찍는 것이 인장이며, 이 인장을 새기는 작업 또는 그 자체를 전각 (篆刻) 이라 한다.

인장의 바닥면인 인면에 써야 할 글월을 전사해서 배치하고, 각종 칼을 사용하여 문장을 새겨 넣는다. 그렇기 때문에 전각을 하기 위해서는 서예의 필법에 능숙해야 하고 필획의 격조와 새김 기법에 모두 능숙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전각은 서법에서 강조하는 글자체의 어울림에 의거하여 필획을 더하거나 덜할 수도 있고 필획을 이동시킬 수도 있다.

 

 

■ 전각의 시원

 전각의 명칭은 중국의 상주(商周)시대에는 새(璽)라고 칭하였고, 한(漢)나라 때는 인장 (印章)이라는 명칭이 등장하게 된다. 그 뒤에 인장의 역사는 계속되며, 명나라에 이르러 문팽(文彭:1498-1537)이라는 전각 전문 작가가 등장하여 전각을 하나의 예술로 승화시키면서 수많은 전각가와 전각 이론가들이 등장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 이전부터 인장의 역사가 시작되고 있지만 거의가 중국의 영향을 받은 것이 대부분이고, 근대에 들어와서는 추사 김정희 선생이 금석학을 연구하여 많은 전각 작품을 남기고 있다.

■ 전각의 종류

 (1) 성명인(姓名印)

개인의 이름을 인장에 새긴 것이다. 고대로부터 가장 많이 쓰이고 있고, 각종 서화류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인장이다. 개인의 개성에 따라 글획을 변형시키는 조형감각이 필요하기도 하다.

(중국)

 (2)아인(雅印), 자인(字印)

옛 사람들은 가까운 사람들끼리 이름대신 불러주는 자(字)를 하나씩 가지고 있었는데 이 자를 인장에 새긴 것이 자인이다. 이 인장은 중국의 서예가이자 전각가인 오창석(吳昌碩)의 자인이다. 오창석의 본명은 준(俊)인데 자신의 이름보다 자를 더 많이 애용해 세인들에게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3)별호인(別號印)

별호는 어떤 사람의 아호이다. 별호인 그 호를 인장에 새긴 것이다. 중국이나 우리나라에서는 호가 널리 쓰였으며 여러개의 호를 가진 경우도 많았다. 우리나라의 서예가이자 전각의 황금기를 이룬 추사 김정희선생은 추사(秋史), 완당(阮堂)이라는 호 이외에도 2백여개의 호를 지어 쓴 것으로 알려진다.

 

 (4) 감장인(감정인(鑑定印)과 장서인(藏書印)

이 인장은 그림이나 서예를 감상하거나 감정, 또는 소장했음을 증명하기 위해 쓰인 인장이다. 그래서 감장인은 서화류를 감정할 때 진위를 판단의 중요한 단서가 되기도 한다. 이 인장은 수백이라는 사람이 평생동안 보고 감상했다는 수백평생진상(樹伯平生珍賞)이라는 감장인이다.

 

 (5) 한문인(閑文印)

한문인은 유명한 글귀나 성어, 격언, 명언, 화론 등의 비교적 부담없고 읽어서 여유가 있는 문구룰 새긴 인장이다. 이 인장은 오창석이 판 것으로 '신선한 서리 속에 핀 국화'라는 뜻의 선선상중국(鮮鮮霜中鞠)이라는 한문인이다.

 

(6) 서간인(書簡印)

사용하는 목적에 따라 편지나 문서의 비밀을 유지하기 위해 쓰던 봉인(封印), 봉니(封泥), 완봉, 신인이 있고, 서신을 주고 받을 때 써던 인장을 모두 서간인이라 한다. 자신의 이름뒤에 언사, 백전, 신앙, 백갓, 백소, 계사, 언소 등의 문구를 덧붙히기도 한다. 완봉이라는 고대에 쓰이던 서간인이다.

■ 도장 찍는 법 ■

■ 글씨나 그림은 호나 성명을 쓰고 마지막으로 도장을 찍음으로써 하나의 작품이 완성된다.

그림에 찍는 도장을 인장 또는 도서라 하며 일반적으로 "낙관을 찍는다"고 말한다. 도장은 대체로 전서를 택하여 성명은 음각으로 새기고 호는 양각으로 새기는 것이 보통이다.

도장에 붉은 인주를 묻혀 글씨나 글씨에 찍는 일은 동양의 서·화 예술에서 독특한 운치를 자아내며 작품의 내용을 증명하고 믿게 하는 동시에 장식적인 면에서도 매우 아름다운 것이다.

전각은 스스로 파서 사용하기도 하지만 좋은 인재를 구입하여 전문가에게 부탁하여 사용하는 것이 좋다.

글씨나 그림에 쓰이는 인장의 종류에는 '성명인'과'호인'이 있고 좋은 문구를 새긴 '수인'과 '유인'이 있으며 '감상인'이 있다.

■ '성명인'은 정사각형으로 하되 이름은 음각으로 새겨서 찍으면 백문이 나오게 하고 '호인'은 양각으로 새겨 찍으면 주문으로 나오게 하는 것이 원칙이다. 낙관을 쓸 때는 호를 먼저 쓰고 그 다음에 성명을 쓰지만 도장은 성명인(백문)을 먼저 찍고 호인(주문)을 다음에 찍는 것이 하나의 습관상의 형식으로 되어 있다.

■ '수인'은 화제를 쓴 오른편 머리 쪽에 찍는 인장으로 그 모양은 장방형 또는 타원형 등이 있다. 여기에 새겨 쓰는 문구는 2자·4자 정도가 적당하고 음각이나 양각 모두 다 쓸 수 있다.

■ '유인'이란 말 그대로 자유로 화면의 적당한 곳을 찾아 찍는 도장을 말한다. 글씨에서는 대개 오른쪽 중간에 찍지만 그림에서는 대개 화제를 쓴 반대쪽 구석에 찍는다. 유인은 주로 양각으로 새겨 성명인. 호인보다는 조금 큰 도장을 찍으며 문구내용은 건강과 축복의 내용을 담는다.

■ 인주는 일반적으로 붉은색이나 종류가 여러 가지이다. 대체로 그림에 적당한 인주는 붉은색 보다는 약간 주황빛이 나며 투명한 인주가 수묵과 잘 어울린다. 인주를 묻혀 도장을 찍고 나면 도장에 묻은 인주를 깨끗이 닦고 높은 곳보다는 낮은 곳에 보관한다. 도장은 돌에 새기는 만큼 조금만 충격을 주어도 깨지기 쉽다.

■ 도장을 찍는 요령은 우선 도장에 고르게 인주를 묻힌 다음 화선지를 서너 장 접어 반드시 편 위에 그림을 올려놓고 나무로 된 직각자를 대고 정신을 집중하여 천천히 눌러간다. 만약, 인주가 선명하지 않을 때는(이때 직각자를 반듯이 고정해서 한다) 다시 인주를 묻혀 두 번 찍는다. 금방 찍은 인주는 젖어 있으므로 화선지를 그 위에 얹어 인주가 그림에 묻지 않게 하는 것이 좋다.

 

 

. 도 법(刀法)

 

도법에는 선인들이 제시한 여러 가지 도법이 있지만 도법에 얽매일 필요가 없음이 함께 강조되기도 한다. 붓에 중봉(中鋒)과 측봉(側鋒)이 있듯이 칼에도 역시 중봉과 측봉이 있다. 글씨에 여러 서체가 있듯이 인장에도 주문(朱文) 백문(白文) 등으로 구분하는 것이 있다. 이에 따라 도법이 달라지게 된다.

 

도법에는 칼을 잡는 법을 뜻하는 '집도(執刀)'와 칼을 움직여 나가는 법을 뜻하는 '운도(運刀)'가 있다.

 

  집도에는 손가락으로 잡는 '쌍구법(雙鉤法)'이 있고 한꺼번에 손으로 도간을 잡는 '악관법'이 있다.

 

 쌍구법은 세밀하고 까다로운 작업을 할 때 적용되고 악관법(握管法)은 선이 굵고 큰 도장을 새길 때

 

주로 사용된다.

 

 

 

운도에는 쌍입도법(雙入刀法)과 단입도법(單入刀法)이 있는데 쌍입도법은 한 획의 양쪽 가장자리에 칼로

 

 각도를 넣는 방법으로 미리 돌 위에 씌여진 문자를 충실히 새겨 나간다. 이는 문팽(文彭)이래 옛부터

 

행해진 기법으로 단입도법이 유행하고는 거의 쓰이지 않게 되었다.

 

 

단입도법은 획의 한 쪽 면에 각도를 넣어 한 획을 만드는 법이다. 칼이 지나지 않는 다른 한 면은 자연의

 

허물어짐에 맡겨지기 때문에 많은 경우 문자를 쓰지 않고 도의(刀意)에 따라 새겨나간다. 명나라 때의

 

하설어(何雪漁)로부터 시작되어 청나라 때의 정경신(丁敬身)에 이르러 기법이 확립되었다고 볼 수 있다.

 

서예나 그림을 그린 후에는 자기 이름이나 호(號)를 쓰고 도장을 찍는다. 이 도장은 문인묵객(文人墨客) 스스로가 새기는 것이 통례이다.

 

예부터 중국에서는 인장이 쓰였는데, 가장 발달하였던 시기는 한대(漢代)였다. 11세기 송대(宋代)에 이르자 새로운 금석학(金石學)의 발달로 한나라의 인장이 부활하게 되었고, 15세기 명대(明代)에 이르러 새기기 쉽고 아름다운 석재(石材)의 발견으로, 이전에 상아를 쓸 때와 같이 장인(匠人)들에게 인장을 의뢰하지 않아도 쉽게 새길 수 있게 되어 문인(文人)들은 장인예(匠人藝)로서는 이룰 수 없는 새로운 경지를 이루어놓았다. 수많은 문인들의 손을 거치는 동안, 전각은 시(詩)·서(書)·화(畵)와 병칭될 만큼 높은 평가를 받게 되었다. 초기의 창시자는 문팽(文彭)과 하진(何震)이며, 청대(淸代)에 이르면 정경(丁敬) 등의 한인(漢印) 연구로 더욱 새롭게 발전하였다. 그들은 출신지인 항저우[杭州]의 아명(雅名)을 따 '절파(浙派)'라는 세력을 이루기도 하였다. 청대는 전각의 흥륭기(興隆期)로, 등석여(鄧石如)·조지겸(趙之謙)과 같은 명인이 잇따라 나타났고, 청대 말에서 중화민국 초에 걸쳐 활약한 오창석(吳昌碩)은 구중국(舊中國) 전각의 마지막 대가였다.

 

한국의 전각역사는 인장이 사용되기 시작한 고려 때부터이다. 당시는 대부분 동인(銅印)·석인이었고, 모양도 4각형, 6각형, 원형이었다. 자체(字體)는 대부분 구첩전(九疊篆)이며 배자(配字)는 방사선식으로 되어 있어 원주를 향하여 머리를 두고 있다. 이같은 고려 전각의 유풍은 조선으로 계승되어 상서원(尙瑞院)에서는 구첩전과 소전체(小篆體)로 동인 ·철인 등을 만들었다. 역대 임금의 많은 어보(御寶)가 만들어졌으며, 서예 ·회화의 발달과 함께 문인 스스로가 전각하는 사인(私印)이 유행하였다. 미수(眉戒) 허목(許穆)은 한국 전각의 제1인자이며, 전각을 남긴 많은 사람 중에서 자기 스스로가 전각하였다고 믿어지는 문인문객은 정학교(丁學敎)·정대유(丁大有)·윤두서(尹斗緖)·오경석(吳慶錫)·이상적(李尙迪)·김정희(金正喜)·김명희(金命喜)·김상용(金尙容)·오세창(吳世昌) 등 20여 명을 손꼽을 수 있다. 재료는 대개 부드러운 납석계(蠟石系)의 돌을 사용하고 도구는 철필(鐵筆)이라는 양날의 손칼을 사용한다.

각법의 종류는 양각과 음각으로 나눌 수 있는데, 양각은 주문인(朱文印)이라 하며 바탕 부분을 새겨내는 것으로 찍었을 때 붉은색의 글씨가 된다. 음각은 백문인(白文印)이라 하며 글씨부분을 새겨내는 것으로 찍었을 때 흰색의 글씨가 된다.

 

전각의 종류에는 성명을 새긴 성명인, 호를 새긴 아호인, 좋아하는 문구를 새긴 사구인(詞句印), 작품의 소장을 확인하기 위한 수장인(收藏印), 새·물고기 등 동물문양을 새긴 초형인(肖形印) 등이 있다. 성명인에는 백문인이, 아호인에는 주문인이 주로 쓰이며, 사구인에는 서화 폭의 우측 상단에 찍는 두인(頭印)과 중간에 찍는 유인(遊印)이 쓰인다.

 

 

전각 실기

1.인면 조정

인재를 사포에 밀고 당겨서 인면을 고른다. 이때 사포는 150~180(방)정도가 적당하다.

2.인면 먹칠

인면에 먹칠을 한다. 인재에 따라 다른 색을 선택하여야 한다. (예:검정색 인재에는 붉은 주묵을 칠한다.)

3.選文과 檢字(선문과 검자)

선문과 검자를 한다. 검자에서는 '전각자전, 전각자림, 갑골문 자전등'을 주로 이용하며, 역대 전각가가 채택한 자체도 참고를 요한다.

4. 印稿(인고)

인고작업은 중요한 것으로서 소밀, 대소, 강약, 기측 등의 사항을 미리 염두에 두는 작업이기 때문에 아주 중요하다.

5. 인면의 칸 나누기

보통 숙련전각가는 칸을 나누지 않는 것 같지만, 나름대로의 눈설미로 칸을 나누게 된다. 여기서는 田자 밑그림을 그려 넣었다.

6.새김질

대체로 당겨 새기게 되나 때로는 밀기도하고 또한 옆으로도 비스듬히 비끼기도 한다. 이 역시 미숙달시엔 매우 어려운 부분이다. 음문은 양문처럼, 양문은 음문처럼 새겨 나간다.

일차 새김질을 마무리 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

7.보도(補刀)

일차 새김 후 인면에 돌가루를 넣는다.

인치에 골고루 밀어 넣는다. 보도를 한다.

8.물로 깨끗이 씻고 물기를 잘 말린다.

인주와 티자, 화선지 아래를 받히는 코팅 처리된 책, 날인준비.

9.인주 뭍히기

인주를 인면에 골고루 뭍힌다.

10.날인(捺印)

티자를 고정시킨 뒤 두번, 세번 잘나올 때까지 날인한다.

11.날인 완성

날인 완성된 인영.

12.인영(印影)

 

출처 : [곳 감] 감성을 키우는 곳
글쓴이 : 조미영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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